[ 스포일러 주의 ]
절망의 끝에서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러스트 앤 본> 입니다.
거칠고 무책임한 삶을 살아온 전직 복서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클럽 경호원을 하다 술에 취해 싸움에 휘말린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됩니다. 당당한 매력을 가진 그녀에게 끌린 알리는 스테파니에게 연락처를 남기지만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던 스테파니와 그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아 보였죠.
어느 날, 범고래 조련사로 일하던 스테파니는 공연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돼요.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스테파니는, 문득 알리를 떠올리고 전화를 걸어요.
두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를 대면한 알리, 무심한건지 배려인건지 스테파니에게 바다로 나가 수영이나 하자고 말합니다. 주저하다 바다로 들어간 스테파니는 수영을 하면서 몇 달 만에 생기를 되찾아요. 알리가 지쳐 잠들도록 바다를 누비던 스테파니의 등에 코끝이 찡해졌던 장면입니다.
한편, 알리는 뒷골목에서 판돈을 걸고 벌어지는 싸움판에 나가게 됩니다. 돈 때문에 시작한 격투기이지만 승리를 거듭하며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게 되죠. 영화에서 알리가 싸우는 뒷골목은, 어둡고 침침한 공간이 아니라 몸과 몸이 부딪히는 생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공간으로 그려져요.
좋은 친구도, 그렇다고 애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던 둘의 사이는 알리가 스테파니의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나가 하룻밤을 보내고 온 다음날 아침, '당신에게 난 뭐냐'는 스테파니의 질문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 직장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알리는 훌쩍 먼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5살짜리 아들은 누나에게 버리다시피 맡겨놓고, 스테파니에게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로요.
추운 북쪽 지방으로 떠나 격투기 훈련을 하던 알리는 몇 달 만에 만난 아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도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아들은 사고를 당하고 생사를 오가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몇 시간의 지옥같은 시간을 보낸 알리에게 스테파니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들의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으려는 스테파니를 알리는 울먹이며 붙잡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리는 주먹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는 아물지도 않아서, 알리가 주먹을 쓸 때마다 욱신거리며 그 때를 떠올리게 하죠. 아픔이 느껴질 때마다 알리는 자신이 그 상처를 통해 얻게 된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큰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서로 그 상처를 위로하고 이를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우리는 요즘 힐링이라는 말을 자주 쓰죠.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처가 많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욱더 누군가 우리를 치유해주길 기다리게 돼요. 그렇지만, 잠깐의 위로와 따뜻한 말로 우리가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에서 알리와 스테파니는 서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해 줍니다.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동기도 부여해주죠.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후벼파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도 있어요. 결국 이 둘은 스스로의 힘으로 상처를 극복하게 됩니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中 -
유시민 전 장관의 신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온 구절이에요. <러스트앤본>을 보고 나서 이 책의 부제 '힐링에서 스탠딩으로'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와닿더라구요.
남에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달라고 조르기보다는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고 그 상처로 생겨난 아픔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게 상처를 대면하는 어른의 방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