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 _ 그 남자의 가방 1994-2003 / 입체작품 / 나무, 칠, 종이에 연필 |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집앞에 왠 남자가 하나가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누구를 찾으시는지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더듬더리며 그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여기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친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묻기를 혹시 자기 가방 하나를 좀 맡아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독특한 모양의 큼지막한 여행가방이었다.
나는 그만 가고 싶었다.
이 이상한 사람 때문에 더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뭐라고 거절해야할지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미
"거기 뭐가 들었는데요?"라고 묻고 있었다.
원치 않았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친절 탓이었다.
"제 날개입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남자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결국 짜증이 났다.
"농담을 하시는데..저는 낯선 사람한테서 그런 물건 맡아줄 형편이 못됩니다.
전철역 같은 보관함을 찾아 보시는게 좋겠군요."
나는 차갑게 잘라 말했다.
그 말에 남자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더니 휑하니 가버렸다.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때
이 사람과의 짧은 만남을 까맣게 잊고 무심코 현관을 들어서던 나는
문가에 희끄무레한 물건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아침의 그 이상하게 생긴 가방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는 가방을 살펴보았다.
종이 쪽지 하나가 손잡이에 매여 있었다.
"미안합니다. 거절하셨던 가방을 다시 놓고 갑니다.
이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를 끼치지는 않는 물건입니다.
여기서 일을 마치는대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벌써 2년전의 일이다.
찾아가기는 커녕 이제껏 소식 한번이 없는
그 남자의 가방은 여전히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동안 여러차례 가방을 열어 보려고 했다.
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다.
요즈음 와서 나는 이따금 그 가방안에
정말 그 사람의 날개가 들어 있는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한쌍의 날개가 그 속에서
푸드덕거리며 몸을 뒤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 '그 남자의 가방' 中 / 안규철 저 / 현대문학 / 2004. 04. 03 -
글 잘 쓰는 조각가, 안규철 작가의 산문집 <그 남자의 가방>에 실린 글입니다.
낯선 남자가 맡기고 간 날개가 든 가방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 후,
마치 '이것이 그 가방이다'라고 말하듯 날개 형상의 가방을 보여줍니다.
안규철 작가는 허구와 실재를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그 남자의 가방>에서는 짧은 글을 통해 제시한 허구를 조각을 통해 마치 실재인 것처럼 전시하는데요,
저 가방 안에 정말 어느 남자의 날개가 들어있을 것만 같지 않나요?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와 가방을 맡기거든, 흔쾌히 받아주세요.
잠시 이땅에 내려와 날개를 보관할 곳을 찾아 헤매는 천사일지도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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